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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로 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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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gathos 댓글 0건 조회 30,429회 작성일 21-12-2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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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로 오신 예수님

11:10

2021. 12/26. 11:00(송년주일, 성탄감사 예배)

올해의 사자성어

2001년도부터교수신문에서 전국 교수들이 선정한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다. 교수들이 선정한 2021년도 사자성어는 묘서동처(猫鼠同處)이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 뜻으로, 쥐를 잡아야 할 고양이가 쥐를 잡지 않고 쥐와 한패가  것을 뜻한 말이다예를 들면 법을 집행하는 사정기관이 범죄자와 한 패가 되어 사적 이익을 챙기는 것을 비꼬는 말이다. 올 한해 우리나라의 모습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년 동안 교수신문에서 발표한 사자성어를 보니 모두가 부정적인 뜻을 가진 글자였다.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것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교회와 성도도 여기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본다. 알고 보면 이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성탄이 인류의 소망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고, 썩어빠진 세상에 소금이 되신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주님이 다시 오셔야 묘서동처의 세상이 끝장이 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 때문이다. 오늘은 2021년도 마지막 송년주일이자 성탄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이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그러면서 그 뜻에 부응하는 삶을 살았는지 돌아보며, 그 뜻을 실현하는 삶을 결단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깃발로 오신 주님

주님은 탄생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예언되었던 사건이다. 본문 또한 그 중에 하나인데, 본문은 주전 700여 년 전에 기록된 것이다.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10). 본문은 메시야이신 우리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예언의 말씀이다. 주님께서 이새의 뿌리에서 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다. 선지자가 다윗의 뿌리이새의 뿌리라고 한 것이 중요하다. 주님이 다윗의 후손인 것은 사실이지만 다윗의 후계자가 아니라 또 다른다윗이라는 것을 선언하기 위함이다. 곧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야라는 것이다. ‘뿌리에서 한 싹이 나온다.는 말씀에도 의미가 있다. 상식적으로 싹은 줄기에서 나오지 뿌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실 메시야가 뿌리에서 싹이 나듯 오실 것이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방법으로 이 땅에 오실 것을 말씀한 것이다. 아울러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만민의 기치로 서기 위함이라고 했다. ‘기치란 히브리어로 네스’(נס)인데, ‘신호또는 표시라는 뜻이다. , ‘군기’(standard), ‘깃발’(banner)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주님은 깃발로 이 땅에 오셨다는 뜻이다.

 

 

구원의 깃발

우선, 주님은 구원의 깃발로 이 땅에 오셨다.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우리에게 구원의 축복이 임한다. 이를 그림처럼 보여주는 사건이 있다. 21장에 나오는 불뱀 사건이다.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에 불만을 품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냈다. 그때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불뱀을 보내 불평하는 그들을 물게 했고, 뱀에 물린 사람들이 신음하며 죽어갔다. 이를 보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해결책을 주셨다. 놋으로 뱀의 모형을 만들어서 장대에 높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는 자는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믿고 순종한 사람들에겐 구원과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21:9). 요한복음에서 주님은 이 사건을 주님의 십자가 사건의 상징으로 인용하였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4,15). 그렇다. 인류는 사단이라는 불뱀에 물려 죄라는 독에 중독이 되어 죽어가고 있다.

 

 

이 세상을 슬픔으로 주름지게 하는 것이 죄다. 죄는 모든 묘지를 가져왔고, 모든 병원을 필요하게 했고, 모든 감옥, 모든 정신병원, 모든 빈민가를 세웠다. 죄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군대를 해산하고, 경찰력을 해체하고, 감옥을 헐고, 입법자를 해고하고, 문을 닫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주님께서 구원의 깃발로 오셨고, 죄로 인해 파괴된 자취들을 바라보시며 슬피 우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구원의 깃발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구원을 받게 된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인생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지옥의 형벌을 받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게 된다. 더 이상 죄 아래 눌려 비참하게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리며 이 세상에서부터 천국의 기쁨을 맛보며 사는 인생이 된다. 이 놀라운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 날이 성탄절이다. 성탄절은 구원의 깃발이신 주님의 탄생을 감사하는 절기다. 구원의 깃발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구원의 감격으로 기뻐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한다.

 

승리의 깃발

다음으로, 주님은 승리의 깃발로 이 땅에 오셨다. 어느 글에서 세대별 성공의 기준이라는 재미있는 내용을 보았다. 10대는 성공한 부모를 둔 것이 성공의 기준이고, 20대는 좋은 대학, 30대는 좋은 직장, 40대는 2차까지 쏠 수 있는 것, 50대는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것, 60대는 아직도 돈을 버는 것, 70대는 건강한 것, 80대는 본처가 해준 밥을 먹는 것, 90대는 전화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성공의 기준이 사람마다, 상황마다, 세대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세대와 상황에도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하나의 기준이 있다.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유일한 성공의 기준이자, 특히 승리의 기준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처음으로 전쟁을 경험한 이야기가 출17장에 나온다. 사막의 사냥꾼이라 할 수 있는 아말렉과의 전쟁이 그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노예생활만 했기에 전쟁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집트를 나와 광야를 건너고 있는 중이라 군대를 조직하여 훈련하고 무기를 갖출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그런 그들이 그 전쟁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거뒀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개입에 의한 기적이다. 그 때 모세가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했다. 이는 하나님은 나의 깃발이란 뜻이다. 여기 깃발이란 말이 본문의 기호라는 말과 같은 네쓰. 그런데 여기에 1인칭 소유격(나의) 어미를 붙이니까 네쓰닛시 발음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하나님은 나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 혹은하나님은 나로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뜻이다. 그러니 승리하는 인생이 되려면 하나님의 깃발 아래로 모이고, 그 깃발과 함께 나아가고, 그 깃발 아래서 싸우고, 그 깃발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후 가나안 정복까지 이스라엘 역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 위해, 승리를 위한 나의 깃발로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성공한 인생을 보장하기 위해 승리의 깃발로 오셨다. 요한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13:8). 마귀의 일을 멸하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에 불과하다. 본질은 따로 있다. 본질은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이다(6:12). 최고, 최대, 최후의 적은 사단이란 뜻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사단의 권세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이다. 그 상징이 곧 십자가다. 이에 대한 보증이 주님의 부활이다.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인 동시에 승리의 상징이다. 또한 치유와 회복의 상징이고, 평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믿어 천국백성이 되었지만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세상에 살고 있다. 때문에 사단의 공격을 받게 되고, 죄의 유혹도 받게 된다. 이것이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성도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이런 세상에서 승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은 승리의 깃발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누구든지 십자가 아래 모여,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면 구원의 복과 더불어 승리의 복을 경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치유와 회복의 복과 평화의 복도 누리게 된다.

 

 

성도는 기수(旗手)!

4장에 주님의 소원이 나온다. 주님의 소원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4:34). 그렇다면 주님께서 그토록 실현하고자 애쓰셨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복음전도(4:35~38). 그래서 주님은 이 복음전도를 유언으로까지 남기셨다(28:18~20). 하지만 바울의 말처럼 대개의 성도는 이런 주님의 소원에 무감각하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2:21,22). 대개의 성도는 자기 일만 구했으나 디모데는 주님의 소원(복음전파)을 위하여 힘썼다는 것이다.

 

 

주님은 구원과 승리의 복을 만민이 받기를 소원하신다. 성도는 이와 같은 주님의 소원을 바울과 디모데처럼 이뤄드리는 사람이다. 본문의 형식으로 표현하면, 성도는 주님의 깃발을 든 사람(旗手)이다. 구원의 깃발, 승리의 깃발을 들고 따르는 사람이 성도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이러한 깃발이 우리 주변 곳곳에 꽂히기를 소원하신다. 그래서 온 세상이 구원의 깃발, 승리의 깃발은 물론 치유와 회복의 깃발, 평화의 깃발이 펄럭이기를 소원하신다. 성탄절은 이런 깃발로 오신 주님을 환영하고 감사하는 날이면서 주님의 소원대로 기수의 사명을 다지는 날이다. 주변의 모든 사람을 주님의 깃발 아래로 모으고, 바라보게 하고, 따르도록, 그래서 구원의 깃발이신 주님을 통해 구원을 얻고, 승리의 깃발이신 주님을 통해 승리를 경험하고, 치유와 회복, 평화를 경험하도록 그 깃발을 높이 들고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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