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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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613회 작성일 18-06-17 13:00본문
주님을 본받아, ‘기도’
눅5:12~16
2018. 6/17. 11:00
일보다 교제
영국의 런던에 웨스트민스터 채플이라는 아주 유명한 교회가 있다. 캠벨 몰겐(Campbell Morgan)이 목회를 했던 곳이다. 몰겐에게 목회의 바쁜 일상 중에서 큰 즐거움이 매일 저녁 사랑하는 딸의 손을 잡고 주변 공원(하이드 파크)을 산책하는 것이었다. 어느 해, 성탄절을 앞두고 갑자기 어린 딸이 산책을 며칠간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이유는 묻지 말아말라고 했다. 그는 여간 서운했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성탄절 아침에 딸이 성탄선물로 슬리퍼를 내밀었다. 이것을 만드느라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선물을 받으면서 그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고맙다. 정말 고맙다. 이걸 만드느라 얼마나 수고했니? 그런데 솔직히 아빠는 선물보다 너와 함께 손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단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한다고 분주할 때 주님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나와 같이 좀 있지 않을래?’ 일보다 중요한 것이 주님과 함께 있는 것, 곧 영적 교제인 기도다.
에이든 토저(Aiden Wilson Tozer)는 이런 말을 했다. ‘열심 있는 성도가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실수는 주님의 일에 너무 바빠 주님과의 교제(기도)를 게을리 하는 일이다.’ 아주 역설적인 말이다. 예컨대 찬양, 교사, 구역활동, 차량봉사, 식당봉사 등 열심히 하는데,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 즉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없는 것이다. 주님의 일에 너무 바빠서 주님과 교제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사실 주변에 이런 사람이 많다. 일은 많이 하는데 기도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이다. 토저는 계속해서 말한다. ‘너무 바빠서 주님과의 교제(기도)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조만간 주님의 일에 대한 의욕도 잃고 시험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이런 현상을 영적 함몰웅덩이(sinkhole), 혹은 영적 탈진(burnout)이라고 한다. 여기에 사단의 노림수가 있다. 사단은 주님의 일을 못하도록 방해하기보다 오히려 많이 하고, 열심히 하라고 한다. 대신 주님께 기도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고 피곤하게 만든다. 다시 말하면 기도 없는 찬양봉사, 기도 없는 교사생활, 기도 없는 구역활동, 기도 없는 차량봉사, 기도 없는 성경공부를 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기도 없는 찬양, 교사생활, 구역활동, 차량봉사, 식당봉사, 성경공부는 사상누각이다. 생명력이 없다. 주님은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 계셨다. 때문에 그 바쁜 일정에도 기도를 결코 쉬지 않으셨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주님을 본받아야 할 것으로, 주님의 ‘기도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기도는 생기와 같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being)이 되었다.’(2:7)고 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기까지 사람은 그저 흙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런데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생령, 곧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 생기가 흙으로 만든 사람을 살아있는 존재가 되게 한 것처럼, 신앙생활에 있어서 생명력이 넘치게 하는 것이 있다. ‘기도’다. 군인이 아무리 최신무기로 무장을 해도 잠들어버리면 그 무장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잠들지 않고 깨어 있어야 무장의 효력을 발휘할 수가 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의 영적 무장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으로 기도를 강조했다(엡6:10~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이 한 구절에서 기도와 관련된 표현이 5회나 반복하고 있다. 성경 전체에서 이렇게 기도를 반복해서 강조한 곳은 여기 밖에 없다. 영적 무장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기도이기 때문에 기도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기도가 빠지면 생명력을 잃게 된다. 반면에 기도하면 죽은 것들이 다시 살아나고, 시들해진 것들이 활기를 띠게 된다.
주님은 기도가 우선순위였다.
이와 같은 기도의 중요성을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 우리 주님이시다. 복음서는 주님의 하루일과가 얼마나 바쁘셨는지를 딱 한 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식사하실 겨를도 없었다.’(막3:20). 이 한 마디에 주님의 하루가 얼마나 바쁘셨는지 잘 드러나 있다. 천국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고, 몰려드는 각종 병든 사람을 고쳐주시느라 식사하실 겨를도 없었다. 그래도 주님께서 멈추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기도다(본문설명).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16). 식사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셨지만 기도는 꼭 챙기셨다는 뜻이다. 식사는 못하셔도 기도는 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러가사’, ‘기도하시니라.’는 동사의 시제가 모두 진행의 의미를 가진 현재분사다. 한 번만 물러가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물러가서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도가 주님의 습관이었고, 가장 우선순위였다는 뜻이다. 사역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고(막1:35),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셨다(마14:23). 그리고 본문에서처럼 바쁜 일과 중에도 시간을 내서 기도하셨다. 또한 특별한 일을 앞두고 항상 기도로 준비하셨고(눅6:12~16, 눅22:35~46, 요11:41 등), 때로는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시기도 했다(눅6:12). 정말 주님은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의 달인이셨다.
우리는 여기서 굉장한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 사실 기도가 꼭 필요한 우리는 기도 못할 이유가 그렇게 많아 기도를 자꾸 쉬는데, 주님은 기도할 필요도 없으신 분이면서도 열일이 있어도 기도만큼은 쉬지 않으셨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로서 주님께 본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점이다. 아무리 바빠도 쉬지 않는 기도생활이다. 기도를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놓는 습관이다. 기도는 사단의 활동에 족쇄를 채우고, 사단의 통로를 차단하고, 사단의 교두보를 제거하고, 사단의 진지를 흔들어 무너뜨리는 영적 무기다. 그러니 아무리 바빠도 쉬어서는 안되는 것이 기도다. 오히려 바쁠수록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기도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분주했지만 ‘바쁘기 때문에 더욱 기도한다.’고 즐겨 말했다. 바쁘니까 기도를 거르는 것이 아니라 바쁠수록 더욱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루터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네 시간씩 기도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기도를 통해 주님의 능력을 덧입지 않고서는 종교개혁이라는 엄청난 일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입버릇처럼 한 말이라고 한다. ‘기도하지 않고 일에 힘쓰는 것은 뿌리를 내리지 않은 채 위로만 치솟으려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고 위로만 치솟으려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그럴 수도 없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그 나무가 더위와 추위, 가뭄과 폭풍우를 어떻게 견딜 수 있겠는가? 우리 인생이 그렇다. 기도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것이 안전하고 든든한 삶의 보장이다.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시련의 가뭄도, 시험의 폭풍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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