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는 최고의 선물에 대한 소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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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648회 작성일 18-04-08 16:49본문
전도는 최고의 선물에 대한 소개이다.
요3:16
2018. 4/8. 11:00
최고의 선물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무엇보다도 성도에게는 신앙의 도전을 주었던 한 어린 소년에 대한 이야기다. 그 소년의 이름은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다. 그는 13살 때 혈우병 때문에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을 잘못해서 그만 에이즈(AIDS)에 걸리고 말았다. 한순간의 부주의로 소년의 인생은 이제 죽음의 길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변함없이 밝게 학교생활을 했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였고,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면서 기쁘게 지냈다. 이런 사실이 어느 기자에게 알려지면서 소년의 이야기는 신문에 매일 게재되었고, TV에도 방영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레이건을 비롯하여 현재 대통령이지만 당시 부동산 업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유명한 팝가수 마이클 잭슨 등 유명인사와 많은 사람이 그를 찾아가 선물도 주고 위로하며 관심을 보였다. 그럼에도 죽음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감염 후 5년 동안 살다가 결국 18살에 죽었다. 소년이 죽기 전에 그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한 신앙잡지에 실렸다. 그 한 부분이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제는 아빠가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구나.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아빠, 전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아무도 아빠와 같은 선물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 아빠는 저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선물로 주셨잖아요. 바로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아빠 때문에 교회에 나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선물로 받았는걸요. 이 보다 더 위대한 선물은 없을 거예요.’
그렇다. 백년도 못사는 짧은 인생에게 영생이란 최고의 선물이다. 영생을 얻지 못했다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영생을 얻었다면 짧은 인생을 살다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성경이 죽음을 끝이라고 하지 않고 ‘잔다.’고 말씀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영생을 얻은 사람은 죽을 수가 없기 때문에 죽음도 잔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잔다는 것은 죽음을 그저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시 일어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니 라이언이라는 소년의 고백처럼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예수님이 최고의 선물일 수밖에 없고, 이 예수님을 소개해 준 아빠가 최고의 선물을 준 것이다. 그러니 복음이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이 주님을 전하는 전도가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도는 우리가 이웃에게 최고의 선물을 소개하는 것이다.
복음의 요약
우리가 잘 알고, 심지어 어린 아이도 암송하고 있는 본문은 최고의 선물인 복음을 요약해 놓은 말씀이다. 성경 66권을 단 한구절로 요약하면 본문이 된다고 한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복음을 주신 이유와 이 복음의 내용, 복음의 효력(능력), 그리고 이 복음의 효력을 누리는 비결을 잘 보여주고 있다. ①‘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주신 이유다. 그 이유는 ‘사랑’이다. 우리를 사랑해서 최고의 선물인 복음을 보내주셨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막달라 마리아 일행을 무덤으로 이끈 것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이었음). 그런데 이 사랑은 하나님도 움직이시게 한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섬기고, 사랑하는 대상을 위하여 일하게 만든다. 이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이와 같은 사랑의 속성이 하나님을 움직였다. 그래서 최고의 선물인 복음을 우리에게 주시도록 작용한 것이다. ②‘독생자를 주셨으니’ 하나님이 보내신 복음의 내용이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다. 여기서 ‘주다.’는 말은 단순히 보내다는 의미 이상이다. 이것은 주님의 헌신적인 삶과 희생적인 죽음까지 포함하고 있다. 우리를 위해 주님의 전체를 몽땅 주신 것이다.
③‘저를 믿는 자마다’ 복음의 효력을 누리는 비결에 대한 말씀이다. 특새 둘째 날 새벽에 말했지만 죄를 용서해 달라는 주님의 간절한 기도가 모든 사람에게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주님의 용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남는 효력이 있지만 모든 사람이 그 효력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함께 십자가에 매달렸으나 주님의 오른 편에 달린 강도만 용서의 효력을 누렸다. 그가 주님을 믿고, 주님의 용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구원의 문이 모두에게 열려있어도 그 문으로 들어간 사람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효력 또한 복음이신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④‘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복음의 효력에 대한 말씀이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소극적으론 멸망하지 않고, 적극적으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다. 멸망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의 결과가 멸망이니까 믿는 사람에겐 죄가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죄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영생이 보장된 것이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 이는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뜻이다. 교제는 아무하고나 하지 않는다. 서로 맞먹는 존재끼리 한다. 그러니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맞먹는 존재, 곧 하나님처럼 영생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의미다. 그런데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인간은 영생을 잃고 죽음과 동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복음이신 예수님을 주신 것이고, 이 주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과 동거하고 있는 우리 인간으로서 영생은 최고의 선물일 수밖에 없다. 또한 전도는 이 최고의 선물을 소개하는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전도에 대한 태도
가끔 TV홈쇼핑을 보면서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저 사람들은 자신이 팔고자 하는 물건을 소개하는데도 나름 전문성을 갖추고 저렇게 열정과 확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데, 최고의 선물인 복음에 대하여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각종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각설이도 마찬가지다. 몇 천원도 안되는 소소한 물건을 팔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망가뜨리며 온갖 재담을 늘어놓는 모습을 볼 때도 같은 생각을 한다.
흔히 ‘일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사람을 네 부류로 구분한다. 첫째, 일을 생계수단의 의미로 바라보는 사람이다(job). 이들에게 일은 생계이고, 때문에 시키는 일만 열심히 하거나 잘리지 않을 만큼만 한다. 둘째, 일을 자신의 지위향상 의미로 바라보는 사람이다(career). 이들은 남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서 더 많은 연봉, 더 높은 지위, 더 좋은 직장으로 옮기려고 한다. 셋째, 일을 자기세계를 만드는 과정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profession). 이들에게 일은 중요한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고 하나의 작품이다. 넷째, 일 자체를 사랑하며 소명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다(calling). 이들은 일을 어떤 방편이 아니라 그 자체를 목적으로 여기고, 무엇을 얻느냐와 상관없이 일 자체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여기서 어느 것이 더 낫고 그렇지 않고를 특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성도로서 우리가 신앙사역, 특히 복음사역에 대한 태도만은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복음전도를 주님이 내게 주신 소중한 소명으로 생각하며 사랑하고,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것이다. 그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전도의 중요성과 가치를 놓고만 보아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게다가 전도는 이웃에게 최고의 선물을 소개하는 일이다. 많은 성도가 전도에 미온적이거나 부담스러워한 이유는 이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전도에 대하여 미온적이거나 부담스러워하고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여기며 긍지와 자부심을 갖자. 전도는 이웃에게 최고의 선물을 소개하는 일이자,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모든 성도는 이 일에 부름을 받은 사명자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블랙’(Black)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여자 아이 미셀이 특수학교 출신 사하이 선생을 만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이야기다. 사하이 선생을 만나기 전, 미셀의 삶은 짐승의 삶과 같았다. 미셀의 운명은 어두움에 갇힌 삶으로 짐승처럼 취급받으며 살다가 그렇게 끝날 것 같이 보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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