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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10대, 40대, 70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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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바라기 댓글 0건 조회 10,444회 작성일 08-11-1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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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과 나

마 전 5학년 아들 녀석과 미장원에 갔다 오는 길에 떡볶이집을 들렸습니다.
아들 녀석이 학교 앞에 자주 가는 떡볶이집을 추천해서 갔는데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더군요. 그때 문득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다녔던 집이 생각나서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시흥시장 안에 위치한 "걸레만두집" 아마 이쪽에 계신 분들은 많이 아실 겁니다.
직장생활, 결혼생활을 타지에서 보내고 몇 해 전에 다시 이쪽 동네로 이사
왔을 때 아내를 데리고 반가운 맘에 들리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갔을 때만 해도 20년 전 그대로 좁은 나무 의자 한 줄에 할머니와 마주 앉아서
먹었는데 오랜만에 들렸더니 번듯한 가게까지 생겼더군요.
일요일 오후라서 학생들이 없었지만, 저와 같이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분들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맛있게 먹는 아들 녀석, 그리고 전 그 옆에서 추억을 먹었다고나 할까요^^

오는 길에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나중에 장가가서 네 자식을 놓으면 여기 떡볶이집에 데리고 와서 먹어라,
네 자식한테 할아버지하고 먹던 곳이라고 하면서 ㅎ"
아들 녀석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더군요
"그래, 할아버지 아빠 그리고 나 그리고 내 자식 이렇게 넷이서 먹자"

4대가 떡볶이집에 앉아 있는 모습....징그럽다 자식아 ㅎㅎㅎ

# 나와 아버지

오후 늦게 집에 들어 왔는데 아버지가 저를 찾고 있으셨습니다.
"뭔 놈의 머리를 몇 시간을 깍노?"
"아, 형우하고 어디 좀 들렀다 오느라고요"
"나하고 두루치기 집이나 가자 소주나 한잔하게"
좀전에 먹은 떡볶이에 한참 배가 불러 있는 상태에서 썩 내키지 않은 표정을
아버지가 읽으셨는지
"내가 살게 이 넘아"
낼모레면 여든이 다 되시는 분이 좀 있으면 40줄에 접어들 아들에게 호기를 부리
십니다.
"아, 그래요 뭐 아버지가 사신다면야 마다할 이윤 없죠..ㅎㅎ"

아버지와 가끔 가는 동네 두루치기 집에 마주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버지가
말문을 여셨습니다. 저에게 두 가지 당부를 하시더군요
첫 번째 당부는 제가 좀 창피한 얘기라서 패스~~~^^
두 번째 당부는 아들 녀석 식습관에 관한 당부였습니다.
밥상을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내는 아들 녀석의 식습관과 억지로 먹이려는 저희 부부의
신경전이 연일 이어지다 보니 옆에서 지켜보시던 아버지 입장에서는 못내 신경이
쓰이셨나 봅니다.

"형우가 배지가 불러서 그래, 배지 고프면 지가 안 먹고 되나? 억지로 먹일 필요 없어"
그런데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시는 중간 중간 자신 앞에 있는 반찬들을 제 앞쪽으로
밀고 있으셨습니다. 그리곤 급기야
"와 안 먹노? 요거하고 요거 같이 싸묵으라, 요 총각무시 맛있데이" 그러시면서 총각무
하나를 제 밥그릇에 놓으셨습니다.
"저 아까 형우하고 떡볶이 먹고 와서 배불러서 그래요"
"한참 일할 놈이 떡볶이 먹어서 되겠나? 고기를 먹어야지, 국물에 짜박짜박 비벼 묵으라"
전 속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배지가 불러서 그래요~~~~~~~~~ㅎㅎ"

# 손자와 할아버지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오신 아버지가 아들 녀석과 거실에 마주 앉았습니다. 항상 기분 좋게
약주 한잔을 하시면 형우를 앉혀 놓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하시는데 신통방통하게도
부잡스런 아들놈이 매번 진득하니 앉아서 할아버지 말동무가 되어주곤 합니다.

"행우(형우)야, 넌 행복한 놈이데이. 이 할아버지는 네 증조부 빨리 돌아가시고 고아처럼
자라서 애비 정이란 걸 못 받고 자라서 네 아빠, 고모들 키우면서 정 주는 법도 몰라서
못 주고 키웠다. 그래도 넌 애비 애미 잘 만나서 이렇게 예쁨 받고 크고 있는 거 큰 복으로 생각
하고 공부 같은 건 못해도 좋다. 건강하고 씩씩하게 자라면......."
말끝은 흐리시며 아버지는 고개를 쑥이십니다.
할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아들 녀석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합니다.

"아빠, 할아버지 또 말씀하시다 잠드셨다...... 이불 깔아 드려"

# 아들과 나 그리고 아버지

늦은 밤이 되어서야 저녁을 거른 허기짐이 느껴졌습니다.
라면 물을 올리면서 한숨 주무시고 나오신 아버지에게 라면을 권했습니다.
"안 묵는다"
개그 프로를 보는 아들에게도 라면을 권했습니다. 댓구도 없습니다.
"그럼 하나만 끊인다."

라면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젓가락을 드는 순간....아버지가 물컵에 소주 반 잔 정도를 따라서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해장이라고 저에게 라면 국물을 조금 원하십니다.

어느새 아들 녀석도 젓가락을 들고 붙었습니다.
라면 하나에 핏줄들에게 빈정이 상합니다.

"두 개를 끓이라고 하던지......." ㅎ


읽으면서 왠지 가슴이 따뜻해 지는 느낌이 들어 한번 퍼 올려봅니다.
저런 소소하지만 행복한 가정들이었음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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