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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원리로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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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815회 작성일 21-04-0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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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원리로서 함께

15:4~5

2021. 4/4. 09:30, 11:00(부활주일, 입교 및 세례식)

교회는 화덕과 같다.

어느 시골교회 한 성도가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예배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성도가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목사님이 교회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니라 어디서나 하나님께 훌륭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성도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해 겨울 어느 저녁, 교회 담임목사가 그 성도의 집을 심방하였는데, 두 사람은 벽난로 앞에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교회출석 문제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목사가 벽난로 옆에 있던 부젓가락을 집어 들더니 불 속에서 잘 타고 있는 석탄 덩어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난로 밖에 따로 놓았다. 그러자 그 석탄의 불은 이내 꺼져버리며 연기만나는 잿빛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벽난로 속에 있는 다른 석탄은 여전히 활활 타고 있었고, 방을 따뜻하게 덥혀주고 있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그 성도가 입을 열었다. ‘목사님, 다음 주일부터 예배에 꼭 참석하겠습니다.

 

물론 어디서나 예배를 드릴 수 있고, 주님과의 교제도 가능하다. 주님은 영이시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신앙 공동체인 교회가 아니고, 성도와 함께 하지 않으면 건강한 영적 생명을 담보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 땅에 많은 교회를 세우고, 성도가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도록 독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많은 교회 이야기가 나온다. 복음서를 제외한 모든 신약성경의 내용이 교회 이야기다.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교회를 섬기고, 어떻게 교회문제를 해결하고, 교회의 사역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영적 생활과 생명이 교회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교회는 화덕과 같다. 영적 생명의 불씨를 보존해주고, 잘 타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영적 생명의 확장성과 영향력도 교회 안에 함께있을 때 보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를 가까이 해야 하고, 교회에 함께 모여야 한다. 주님의 몸인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것이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가지의 생명은 줄기가 결정한다.

요한복음에는 생명과 관련한 몇 가지 중요한 주님의 말씀이 나온다. 첫째, 주님께서 자신을 생명이라고 선언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1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11:25). 둘째, ‘생명의 공급자라고 했다. 주님은 자신을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6:48). 생명의 떡은 살아있는떡이란 뜻과 함께, 생명을 주는’, 혹은 살리는떡이란 뜻이다. 주님이 생명을 주고 살리는생명의 공급자시란 뜻이다. 그래서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했다. , 주님과 함께 한 사람은 영원히 산다는 뜻이다. 주님으로부터 계속 생명을 공급받기 때문이다. 셋째는,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10:10)이라고 하셨다. 단순히 생명의 공급자를 넘어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하는 분으로 오셨다는 뜻이다.

 

넷째는 본문으로, 생명을 얻고, 생명을 유지하고, 또한 생명의 풍성하게 맺게 하시는 분이라고 했다. 본문은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을 포함하여 이를 포도나무와 가지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포도나무 줄기에 붙어있는 가지라야 생명을 얻고, 생명을 유지하고, 많은 열매를 맺는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하면 참 생명을 얻고, 유지하고, 풍성한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는 당연한 결과다. 생명이신 주님, 생명을 살리고, 더욱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 생명을 얻는 방법이고, 더욱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비결인 것이다.

 

EndAnd로 만든 사건

오늘은 부활주일이다. 십자가라는 극형을 받아 처참하게 죽으신 주님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살아나신 날이다. 이렇게 죽음을 생명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놓은 사건이기에 부활은 우리에게 최고의 희망이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있을 수 없는 거짓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것은 기적도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께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신 사건, 영원한 존재이신 분이 다시 영원한 존재로 돌아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활은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과 함께 사셨던 주님께서 하나님이시고, 또한 영원한 생명이심을 확증해주는 사건이다. 더불어 우리 기독교와 기독교 신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기도하다.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생명의 종교라는 것, 기독교의 신앙은 영원한 생명을 믿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와 함께 빈 무덤이다.


우리를 주님과 묶어주고, 영원한 생명과 묶어주는 것이 십자가(). 그리고 부활은 ’(end)을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주는 그리고’(and) 사건이다. endand로 만든 사건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으로 이어주는 것이 부활이다. 새로운 존재, 새로운 상태, 새로운 시작, 새로운 세계(차원)로 이어주는 사건이다. 그 상징이 빈 무덤이다. 아무튼 이 부활의 생명을 얻고, 유지하고, 풍성하게 누리는 비결이 함께.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부활의 생명을 누리고 있는 공동체와 함께 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을 얻고, 생명을 유지하고, 생명을 누리고, 생명을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비결이다. 항상 부활의 주님과 함께, 부활을 주님을 고백하는 부활 공동체인 교회와 함께 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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