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원리로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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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9,610회 작성일 21-03-12 13:25본문
기도의 원리로서 ‘함께’
행4:23~31
2021. 3/7. 11:00
기도의 클러스터
‘클러스터링’(clustering)이란 말을 들어보았는가? 클러스터링이란 ‘무리짓기’란 뜻인데, 따로따로 작동하는 여러 컴퓨터를 논리적으로 결합하여 전체를 한 대의 컴퓨터처럼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이다. 수리와 교환이 쉽고, 가용성과 성능을 높일 수 있다. 슈퍼컴퓨터보다 훨씬 성능이 좋다고 한다. 오늘날 이 기술이 산업에 폭넓게 활용이 되고 있다. 소위 말하는 산업집합단지로 대표적인 예가 미국의 실리콘벨리(미국 캘리포니아 중서부에 있는 첨단기술업체가 몰려있는 곳)를 들 수 있다. 이를 ‘첨단기술클러스터’라고 한다. 순천에도 해룡에 ‘전남친환경쌀클러스터’가 있다. 이 용어를 신앙생활에 차용하여 ‘클러스터 기도’라는 말이 생겨났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을 뜻한다.
기도에는 ‘개인기도’와 ‘합심기도’가 있다. 성경은 이 두 종류의 기도를 다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개인기도는 개인의 영적 성장과 성숙에 절대적인 요소다. 기도가 곧 영적 호흡이고, 주님과 친밀한 교제방법인 영적 대화이기 때문이다. 주님과 연결하는 끈이고, 영적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기도다. 그러므로 성공적인 개인기도는 영적 친밀함을 높여주고, 경건한 영적 생활을 보장해준다. 반면 합심기도는 성도가 함께 모여 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마음을 합하여 드리는 기도다. 합심기도의 특징은 공동체를 세우고, 공동체를 부흥하게 하는 능력에 있다. 성경에서 그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행1장에 나온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합심기도다. 그들의 한 마음으로 드린 간절한 합심기도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했고, 이로 인하여 우리 기독교회가 탄생하였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소심한 겁쟁이 제자들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두가 주목하는 영적 거인으로 만들었다. 합심기도의 결과다. 그리고 12장에서는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고, 교회가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합심기도를 드렸다. 그때 천사가 베드로를 석방시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베드로가 지키는 군인들 사이에서 손발이 묶인 체 자고 있었는데, 천사가 그를 깨웠고, 일어나니 쇠사슬이 풀어졌다. 옷을 입고 천사를 따라 감옥의 철문 앞에 이르니 감옥의 문이 절로 열렸다. 이렇게 베드로가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게 되었다. 성도의 뜨거운 합심기도 때문이다. 오늘 본문도 합심기도의 중요한 사례 중에 하나다.
함께 기도하는 교회
이미 행2장 마지막 부분에도 나오지만 예루살렘교회의 영적 습관 중 하나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는’(2:44) 것,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는’(:46)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모여서 힘썼던 것이 ‘오로지 기도하는’ 것이었다(:40).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무엇을 위해 모이냐가 더 중요하다. 예루살렘교회는 ‘믿는 사람이’ 함께(누구와), ‘날마다’(언제), ‘마음을 같이하여’(어떻게) ‘성전에’ 모였고(어디서), 모여서 ‘기도에’ 전혀 힘썼다(무엇을 위해). 본문 또한 이와 같은 예루살렘교회의 모습이다. 그 결과 다 함께 성령충만을 경험했고, 교회공동체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 암담한 시대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얻었다. 우리에게도, 그리고 우리교회에도 이런 아름다운 일이 일어날 수 있길 진심으로 소원한다. 예루살렘교회는 합심기도를 어떻게 하였기에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을까?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다.
본문의 배경은 행3장부터 시작이 된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 걸인을 만나 걷게 하는 기적을 베풀었다, 이 일로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주요인물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그들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메시야이신 것을 증거했다. 이를 마뜩찮게 여긴 유대 지도자들이 그들을 체포했고,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18)는 엄중히 경고를 받고 풀려났다. 본문은 이러한 내용을 교회 공동체에게 그들이 세세히 보고를 하고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합심기도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이 담겨있다. 합심기도는 직면한 어려움을 성도가 함께 나누는 장이다.
베드로와 요한은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고,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엄중한 경고를 받고 풀려났다. 이는 장차 교회의 앞길이 평탄치 않을 것을 예고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는 것은 신앙에 대한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일이다. 이렇게 힘든 상황을 그들은 자기 가슴에만 품고 있지 않았다.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다(23). 직면한 어려운 현실을 공개하고 기도를 요청한 것이다. 이것이 합심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기도의 내용을 공유해야 함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기도하였다.
사도들과 예루살렘교회 성도는 문제를 회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문제에 짓눌리지도 않았다. 문제를 깔고 앉은 셈이다. 그들은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하였다. 합심기도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기도는 매우 구체적이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아뢰는 일부터 시작했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27,28). 평소 원수처럼 지내던 사람들(헤롯과 빌라도)이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기 위해서 함께 공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상황설명을 안 들어도 이미 아신다. 하지만 이렇게 상황설명을 드리면서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구체적인 관계가 되고 깊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상황을 다 아시면서도 우리로부터 상황설명을 듣길 원하신다. 부모의 심정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이렇게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린 다음 한 걸음 더 나아가 간절히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기도했다. 그 제목이 너무 깊고 멋지다. 첫째, 주님의 종들이 담대하게 ‘주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29). 여기서 ‘주님의 말씀’이란 ‘예수님의 부활’(33)이다. 사실 유대 지도자들이 권력으로 막으려고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떤 위협과 위험에도 이 일을 담대하게 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세상권력으로부터 목숨을 구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걸고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둘째, 주님의 능력으로 병이 낫고 주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30).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다. 이 역시 첫 번째 기도제목과 관련이 있다. 효과적인 복음전파를 위해서다. 물론 기적 자체가 복음은 아니지만 복음을 듣도록 사람을 주님 앞으로 복음 앞으로 모으는데 아주 효과적이다(3:11). 그래서 기적이 따르는 삶을 통해 효과적으로 부활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이런 기도를 드린 것이다. 우리도 기적이 따르는 삶, 기적이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 기도하자!
응답하신 하나님
이렇게 기도를 드리고 나니 놀라운 하나님의 응답이 즉시 임했다. 합심기도의 위력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31). 응답이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모인 곳이 진동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셨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시내산에 임재하신 하나님). 동시에 이 사건은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면 사단의 진지가 요동하여 무너진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사단은 우리 안에 많은 진지를 만들어놓고 그곳을 중심으로 우리를 괴롭히고 무너뜨리는 활동을 한다. 부정적인 생각, 과거의 쓴 뿌리, 불편한 관계, 질병, 불안과 염려, 걱정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 이런 사단의 진지가 흔들려 무너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합심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부르고, 사단의 권세를 묶고 그 진지를 흔들어 무너지게 하는 강력한 무기다. 다른 하나는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우리는 합심기도가 성령충만의 비결인 것을 이미 오순절 사건(행2:)에서 익히 보아 알고 있다. 그 결과 담대함을 얻어 목숨을 걸고 부활의 복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래서 궁극적인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었다.
거룩한 방화범이 되자!
어떻게든 기도는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함께 마음을 합하여 드리는 합심기도가 더욱 중요하다. 이것이 능력을 부르는 기도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이나 신앙생활에서 함께의 중요성은 말할 것도 없지만 기도에 있어서도 함께가 중요하다. 우리 또한 예루살렘교회 성도처럼 지체가 함께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교회에서 모여서 기도에 전혀 힘썼으면 좋겠다. 이것이 교회가 잘 되고, 가정이 잘 되고, 우리 개인이 잘 되는 비결이다. 요즘 청년부의 헌신으로 수요예배가 기도회 중심으로 달궈지고 있다. 많은 지체가 수요예배에 참석하여 이곳에서 기도의 불씨를 가져다가 구역에서, 가정에서 기도의 불을 일으켰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도의 불을 지르는 거룩한 양적 ‘방화범’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로 인하여 우리 가정이, 구역이, 교회가 기도의 용광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도하기 전에는 문제가 커 보이고 문제만 보이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커 보이고, 하나님만 보이게 된다. 기도는 사태를 역전시키고 환경을 변화시킨다.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연약함이 강건함으로, 억압의 환경이 자유의 환경으로 변한다. 모든 위대한 일 이면에는 위대한 기도가 있다. 하나님의 도움은 기도만큼 가까이 있다. 기도할수록 하나님의 도우심에 다가가는 것이다. 연약한 우리가 강하게 사는 법, 가진 것 없는 우리가 부유하게 사는 법, 무력한 우리가 유력하게 사는 법, 어리석은 우리가 지혜롭게 사는 법은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밖에 없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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