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됨의 조건으로서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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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9,942회 작성일 21-02-07 14:36본문
제자됨의 조건으로서 ‘함께’
행1:15~26
2021. 2/7. 11:00
피쉬 볼(fish ball)
정어리는 먹이사슬의 말단에 있는 작고 약한 물고기다. 이들은 천적을 만나면 한데 모여 거대한 원을 만든다. 이렇게 뭉쳐진 정어리 떼는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처럼 보이는데, 이를 ‘피쉬 볼’(fish ball)이라고 한다. 피쉬 볼의 역동적인 움직임은 고래나 상어처럼 덩치가 큰 포식자를 당황하게 만들고, 함부로 덤비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정어리를 바다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라고도 한다. 이렇게 피쉬 볼을 형성한 정어리 떼를 보면 어떤 포식자도 도망치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또한, 수많은 눈이 있어서 포식자를 일찍 발견하여 미리 위험을 피하고, 혼자서는 헤쳐 나가기 힘든 험난한 물살도 힘을 합쳐 헤엄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서로 힘을 합쳐서 헤쳐 나가는 ‘정어리의 지혜’를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다. 우리 또한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헤엄치다보면 크고 작은 어려움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함께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큰 힘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이나 신앙생활에서 ‘함께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고, 함께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보다 소중한 인생의 자산은 없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둘러보라! 그리고 힘들고 지친 누군가가 있다면 먼저 손 내밀어라! 그러면 오늘 내민 그 손이 부메랑처럼 언제가 내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타깝고 가련한 사람이 있다면 ‘돕는 손이 없는’ 사람이다. 함께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함께할 사람이 없다.
제자를 부르신 이유
성경은 예수님께서 열두제자를 부르신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다(막3:14,15). 이것을 달리 제자의 사명, 곧 제자된 교회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첫째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14b), 둘째는 ‘전도도 하며’(14c), 셋째는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15). 함께, 전도, 섬김을 위해 제자를 부르셨다는 것이다. 바로 이 세 가지가 제자의 사명이고 교회의 사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먼저가 ‘함께’다. 전도와 섬김과 같은 사역보다 ‘함께’가 먼저라는 것이다. 이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주님과 ‘함께 있음’이다. 신앙생활에서 예배, 기도, 말씀묵상을 강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들이 주님과 함께 있음의 비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주님과 ‘함께 있음’보다 앞서거나 중요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이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다. 생각해 보라! 주님이 길이신데, 길이신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다. 주님이 진리신데, 진리이신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미궁에 빠지거나 미혹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항상 허전함과 삶의 무의미를 떨치지 못한 사람이 있다. 그의 삶에 진리이신 주님이 빠져있기 때문이다(눅5:1~). 주님이 빛이시고 생명이시다. 빛이신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둠에 갇힐 수밖에 없고, 생명이신 주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가 없다.
사역의 출발점으로서 ‘함께 있음’
그러므로 인생은 주님과 함께 있어야 삶의 방향과 길을 잃지 않게 되고, 의미와 가치로 채워진 만선인생을 살 수 있다.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많은 열매를 맺는 형통한 삶을 살 수 있고, 어둠의 세력이 틈타지 못하는 건강하고 영향력이 있는 삶을 살 수가 있다.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신 이유, 우리를 부르신 이유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과 빛이 되시기 위해서다.
그리고 모든 영적 사역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된다.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빛을 받아 반사하는 반사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충전이 되어야 움직이는 전기차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님과 함께 있음은 빛을 받는 것과 같고, 전기를 충전하는 것과 같다. 주님과 함께 있어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하시는 일을 보고 배울 수 있다.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어떻게 섬기시는지, 어떻게 사랑하시는지, 어떻게 설교하시고 전도하시는지 보고 배울 수 있다. 따라서 이과정이 없이 사역을 하면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자신의 야망을 위한 것이 되고 만다. 주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이 생긴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를 부르신 후 3년 동안 항상 함께 먹고, 자고, 걷고, 이야기하고, 활동하셨던 것이다. 이렇게 ‘함께 있음’에서 ‘교제’(코이노니아)가 나왔고. ‘함께 있음’에서 ‘배움’(디다케)이 나왔고, ‘함께 있음’에서 ‘섬김’(디아코니아)가 나왔고, ‘함께 있음’에서 ‘예배’(레이투르기아)가 나왔다. 이 모든 것의 기초는 ‘함께 있음’이다. 이것이 또한 제자됨의 중요한 조건이다.
제자됨의 조건
본문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주님의 분부에 따라 오순절 성령강림 전,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120명의 성도가 모여 함께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들은 기도하던 중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보충했다. 그때 그들이 자격으로 내세운 것이 있다. 그것은 출신도, 학력도, 재능도, 나이도, 성별도, 업적이나 스펙도 아니었다. 그것은 요한의 세례로부터 예수님의 승천 때까지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이었다(21,22). ‘항상’ 함께 있고, ‘항상’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서 사도를 뽑았다. 그러니까 그 조건은 ‘함께’다. 다시 말하면, ‘All 출석’인 것이다. 이것이 사도의 자격조건이었다. 함께 하는 것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에서도 일꾼을 선출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출석’이다. 얼마나 각종 예배와 모임에 출석을 잘 하느냐! 함께 있음의 훈련이 잘 된 사람이냐가 중요한 조건이다. 그러므로 ‘함께 있음’은 제자됨의 조건이면서 부르심의 목적이고, 또한 사역의 전제다.
함께 있음은 여러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 함께 있음은 공감(共感)하고, 공유(共有)하고, 공재(共在)하고, 공생(共生)하는 것이다. 때문에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고통도, 행복도 나눌 수가 있다. 이 모두가 함께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함께 있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성경이 함께 있음을 제자됨의 절대조건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함께 있음이 곧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있어야 물이 든다. 닮아간다. 주님께 물들기 원하는가? 주님의 마음을 닮고, 성품을 닮고, 삶을 닮고 싶은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기를 갈망하기 바란다. 주님께 기도하고, 찬양하고, 섬기고, 말씀을 묵상하고, 예배하는 자리에 함께 있기를 바란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이고, 또한 주님의 사랑을 받는 비결이다. 이것이 주님께 물들고, 주님을 닮는 비결이다. 제자는 항상 주님과 함께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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