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리는 말씀 > 설교말씀 기뻐하는교회 - 대한예수교장로회

본문 바로가기

설교말씀

설교말씀 HOME


살리는 말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227회 작성일 19-06-09 12:58

본문

살리는 말씀

47:1~12

2019. 6/9. 11:00

한 말씀만 하소서!

성경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왕과 반역을 일으켰다 들통이 나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가 있었다. 사형수는 왕이 성경을 사랑하는 줄 알고 왕에게 호소했다. ‘왕이시여. 저는 반역을 일으켜 처형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사형을 당하기 전에 성경을 꼭 한 번 읽고 싶습니다. 헛된 일만 일삼다가 성경도 한 번 읽지 못하고 죽게 된 것이 너무 안타깝고 후회가 됩니다.성경을 사랑한 왕은 사형수의 요청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일이 지나 왕이 사형수에게 성경을 다 읽었는지 물었다. 그러나 사형수는 다 못 읽었다고 했다. 상당한 기간이 지났음에도 성경을 다 읽지 못한 이유를 물었다. 사형수가 대답했다. ‘성경 구절이 많은데 하루에 한 구절씩 연구하고 묵상하며 읽다보니 아직 다 읽지를 못했습니다.’(성경전체의 장과 절; 1,189, 31,102). 왕은 그가 단순히 성경을 읽지 않고 연구하고 묵상하면서 읽는다는 말에 큰 감동을 받아 이런 명령을 내렸다. ‘그럼 집에 가서 성경을 다 읽고 죽어라.그를 석방시켜 준 것이다. 성경이 한 사람의 사형수를 살려준 것이다. 왕이 사형수를 이렇게 석방시킨 것은 적어도 성경을 묵상하며 읽는 사람이라면 새롭게 변화되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에 소설가 박완서 선생은 아들을 잃었다. 그녀는 온 세상 사람이 올림픽 경기에 환호할 때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3개월도 되지 않아 아들까지 잃었기에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다. 그래서 올림픽으로 떠들어대는 온 세상 사람의 입을 지퍼로 막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고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하루하루 죽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하나님을 찾아 나섰다. 그때의 심정과 신앙여정을 적은 것이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이다. 하나님께 한 말씀만 들으면 살 것 같은 간절함이 기록되어 있다. 시편저자에게서도 이와 같은 심정을 발견할 수 있다.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119:20). 그는 마음이 상할 만큼 말씀을 사모하였다. 여기서 상하다’(גרס)말씀을 너무 그리워해서 마음이 부서졌다.는 뜻이다. 마음에 병이 날만큼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사모한 이유를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50). 하나님의 말씀이 죽음의 위기에서 자신을 살게 했고, 인생의 고난 중에 위로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한 말씀을 그토록 사모했고, 갈망했던 것이다


위로와 생명의 말씀  
그렇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지으셨고 주관하신다. 모든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힘을 공급받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말씀으로 하셨다.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1:3). 여기서 이르시되말씀하시기를이다. 1장에 이 말이 여섯 번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뤄졌다. 이는 세상의 근원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이다. 텅 빈 곳을 채우고, 무의미를 의미로, 혼돈을 질서로, 죽은 것들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말씀이다. 또한 모든 위로의 근원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를 위로하신다. 그래서 성경을 위로의 말씀이라고 한다. 우리 찬송가 가사처럼 이 세상에는 근심된 일이 많고, 죽을 일만 쌓여있다. 그러니 평안을 찾아도 평안이 없다. 위로를 찾아도 위로 받을 곳이 없다. 말씀만이 위로이고, 말씀을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가 있다. 물론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내 이름을 거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속에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다. 나를 살리는 말씀이 있고, 나를 위로하는 말씀이 있다. 나에게 용기를 주고, 소망을 주는 말씀이 있다. 우리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이유,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다. 그래야 말씀을 통해 생명과 위로를 받아서 내가 살고, 살 수 있고, 더욱 풍성하게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시작된 물

특히 오늘 본문은 에스겔 선지자의 환상이다. 살리고, 살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는 말씀의 능력과 특징을 잘 보여준다. 본문은 40장부터 시작된 새로운 예루살렘성과 예루살렘성전에 대한 환상의 일부인데,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에 대한 환상이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시작된 작은 물줄기가 뻗어갈수록 발목에서 무릎으로 허리까지 차오르고, 다음에는 헤엄칠 만큼 물이 깊어지더니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었다. 작은 물줄기가 뻗어갈수록 물이 점점 많아져 강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신약적 의미로 해석하면 주님의 겨자씨 비유처럼 하나님 나라의 확장성, 복음의 확장성, 은혜의 확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물의 영향력이다. 이 물로 인하여 강 좌우편에 나무가 자라고,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니 바닷물이 살아나서 모든 생물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아지고, 어장이 형성되니 어부가 모여들고, 강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강 좌우편에서 자란 나무는 각종 열매를 맺어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었다. 이 모두가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물 때문에 일어난 역사다.

 

물은 곧 생명을 의미한다. 물과 생명이 깊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모든 문명이 강을 끼고 시작이 되었고, 도시도 마을도 공장도 모두 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세워졌다. 하나님이 세우신 최초의 마을 에덴동산도 네 강의 발원지에 있었다(2:10~14). 우리 인체의 80%가 물로 되어 있다. 물이 생명유지의 필수조건이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이고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4:14)이라고 하셨다. 주님이 생명이시고,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요한은 이 주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1:14)이라고 했다. 주님이 말씀이라는 뜻이다. 주님이 말씀이라면 말씀은 곧 생수()인 것이다. 그리고 생수인 이 말씀은 생명이다. 그래서 물처럼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살게 하고,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이 말씀이다. 본문에서 에스겔 선지자가 본 환상은 말씀의 능력(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작은 물줄기가 큰 강을 이룬 것처럼 작은 말씀의 씨앗이 나중에는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큰 강과 같은 능력으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주변에 온갖 혜택을 주게 된다(7~12). 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 놀라운 말씀을 주님은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문제는 이와 같은 말씀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면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말씀을 신뢰하지 않거나 우리 안에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말씀의 능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집에 가서 배터지게 밥 처먹고 똥이나 싸고 죽어버려라!).

 

말씀을 마음에 두라!

시편저자는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119:11). 여기서 두었다.의 말(차판, צפן)은 비밀로 하기 위해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숨겨놓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찾을 수 없는 비밀한 곳에 귀중품을 숨겨두는 모습이다. 그러니까 그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마음 깊숙한 곳에 주의 말씀을 보물처럼 쌓아두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말씀을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긴다는 고백인데, 그래서 이 말씀을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고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에 차곡차곡 쌓아두게 된 것이다. 마음에 깊이 품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말씀을 마음 깊은 곳에 쌓아둘 수 있을까?

 

옛날부터 말씀을 마음에 쌓아두는 것을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라고 했다. 이 거룩한 독서에는 관찰’(Observatio-읽고 듣고 암송하고 연구하는 것), ‘묵상’(Meditatio), ‘기도’(Oratio)의 단계가 있다. 이것을 줄여서 묵상이라고 한다(1:2). 묵상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말씀을 마음에 쌓아두고, 마음에 품는 것이 묵상이다. 그래서 성경은 물론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 묵상을 강조했다. 크리소스톰은 거룩한 책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단순히 서가에서 침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묵상을 통해 우리 마음에 새겨두기 위해서다.고 했다. 말씀은 장식용이 아니라 묵상을 위해 주셨다는 것이다. 귀고 2세는 묵상 없는 읽기는 건조하다. 읽기 없는 묵상은 실수를 유발한다.고 했다. 성경을 읽기만 해도 안 되고 묵상만 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말씀을 읽고, 읽은 말씀을 기초로 묵상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경험하고, 말씀의 능력도 경험할 수 있다. 사막에서 자라는 선인장의 뿌리는 길게는 100미터 이상 뻗어있다고 한다. 물을 얻기 위하여 뿌리를 길고 깊게 뻗은 것이다. 이처럼 말씀을 사모하며 묵상하는 사람, 그 마음 깊은 곳에 생명의 말씀을 많이 쌓아둔 사람에게 주님의 은혜가 넘치게 된다. 우리 안에서 죽은 것들과 죽어가는 것들이 다시 살아나고, 잠자는 것들이 깨어나게 된다. 병든 것들이 치료되고, 무너진 것들이 회복된다. 절망이 소망으로, 낙심이 위로로, 두려움이 용기로 바뀌게 된다. 이와 같은 소중한 인생의 빛나는 보배를 말씀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862 / 15 page

설교말씀 목록

게시물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