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본받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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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양식 댓글 0건 조회 10,410회 작성일 18-07-01 12:50본문
주님을 본받아, ‘감사’
마14:13~21
2018. 7/1. 11:00(맥추감사주일)
감사는 기적을 부른다.
어느 교회 사모가 위암판정을 받자 그 충격으로 입을 굳게 다물어버렸다.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교회를 개척할 때 극심했던 고생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남편과 하나님께 원망이 컸다. 어느 날, 남편 목사가 그가 졸업한 신학대학교 학장을 만났다. 학장은 그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고 무슨 일이라도 있냐고 물었고, 남편 목사는 어렵게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학장이 이런 제안을 했다. ‘노트를 한권 사다가 사모님에게 주세요. 그리고 그 노트에다 감사한 일만 생각나는 대로 적으라고 해보세요.’ 학장의 충고대로 남편 목사는 노트와 볼펜을 아내에게 주면서 그렇게 해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사모는 이 마당에 무슨 감사할 일이 있겠냐며 벌컥 화를 냈다. 하지만 남편이 나간 후 한참 생각에 잠긴 사모는 평범하고, 사소한 일부터 하나 둘 감사한 일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감사해야 할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부터 찾아다니며 감사했던 일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하고, 함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통증이 사라지고, 약한 다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병원을 찾아가 다시 검진을 받게 되었는데, 의사가 깜짝 놀랐다.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감사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감사가 치료와 회복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런 것을 ‘감사 치료법’(thank-you therapy)이라고 한다. 병은 대부분 위 이야기의 사모처럼 나쁜 스트레스에서 온다. 그리고 스트레스의 원인은 마음의 상처와 부정적인 생각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병을 극복하게 된다. 유명한 암(癌)전문병원 텍사스 주립대 MD앤더슨 암센터에서 31년간 봉사한 김의신 박사는 신앙이 암치료에 실제적인 효과가 있다고 했다. 찬양대원과 일반인을 비교해보니 찬양대원의 면역세포수가 일반인보다 몇 십 배도 아닌 무려 천 배나 많은 것으로 측정되었다. 감사하면서 찬양하고 사는 것이 그만큼 건강에 유익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한다.’(시50:23)고 했다. 감사생활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제사라는 것이다. 그러니 감사하는 사람이 이와 같은 복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주님의 감사생활
주님은 감사의 달인이셨다. 감사가 일상이었고, 거룩한 습관이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주님의 ‘감사생활’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한다. 이미 주님의 기도생활에서 말했지만 주님은 기도로 하루 시작하시고,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셨다. 식사할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쁜 일상에도 틈을 내서 기도하셨고,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수시로 기도하셨다. 그런데 이런 기도의 첫 머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감사였다. 감사가 기도의 시작이었고, 감사로 끝을 맺었다. 본문을 포함해서 네 곳 정도에 주님의 감사가 나온다. 첫째는 어린 아이 같은 우리에게 주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마11:25~27). 둘째는 죽은 지 나흘이 지난 나사로 무덤 앞에서 드린 감사(요11:41~44), 셋째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식사(최후의 만찬)를 하시면서 떡과 잔을 들고 감사하셨다(눅22:17~20). 그리고 넷째는 본문이다. 여기에 나온 주님의 감사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모든 감사가 기도 중에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도의 중요한 내용으로 감사가 나오고 있다.
기도의 사람이 곧 감사의 사람
이렇게 주님의 네 번의 감사가 모두 기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감사생활이 기도생활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감사는 기도의 중요한 요소다(기도의 손 예). 동시에 우리를 깊은 감사생활로 이끄는 것이 기도다. 그 예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시편을 내용별로 분류하면 탄식(원)시가 가장 많다. 이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증거다. 그런데 탄원(식)시의 대부분이 처음에는 탄식(원)으로 시작을 했다가 마지막엔 감사와 찬양으로 끝을 맺는다. 물론 기도를 하자마자 상황이 바뀌고 문제가 해결되어 그런 것이 아니다. 상황도 문제도 그대로인데, 기도를 하다 보니 문제를 바라보는 눈과 상황을 인식하는 태도가 바뀐 것이다. 때문에 탄식이 감사로, 탄원이 찬양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이 감사를 이렇게 정의했다. ‘감사는 좋은 것을 보는 능력이다.’ 멋진 정의다. 좋은 것을 보는 능력이란 좋은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좋은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도 좋은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감사의 능력이다. 좋은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은 좋은 것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러면 이런 능력이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느냐? 기도의 사람이다. 기도할 때 주어진다. 그래서 기도와 감사는 거룩한 동반자다. 무릎을 꿇으면 보게 된다. 무릎을 꿇는 사람이 서 있는 사람보다 더 멀리, 더 깊이, 더 넓게, 더 정확하게 보게 된다. 기도는 우리의 영안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릎을 꿇는 순간 좋은 것을 보는 능력을 부여해 주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것을 볼 수 있기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다니엘).
있는 그대로 감사
본문은 주님께서 드렸던 감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감사하는 것이다. 어떤 분이 쓴 글인데, 단순하지만 퍽 감동이 되어 소개한다.
지금 숨 쉴 수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햇빛을 보며 걷고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지금 살아서 움직이며 할일이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한 잔의 물을 마실 수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일용할 양식이 있나요?
그러면 감사하세요.
지금을 감사하라. 나아가서 지금 있는 그대로 감사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감사생활에 실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있는 그대로를 자꾸 놓치기 때문이다. 감사할 일이 있으면 지금하고, 부족해도, 보잘 것이 없어도 지금 있는 그대로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에서 이와 같은 주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본문을 읽으면서 이 오병이어(五甁二魚)의 기적현장에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이 있었다면 주님과 제자들의 모습에 배를 움켜쥐고 웃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개그가 없다. 생각해 보라! 굶주린 5천여 명의 군중을 두고 그들을 먹일 음식이라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조각을 주님께 드린 제자(안드레)나 그것을 받아 그대로 들고 감사하는 주님의 모습이 너무 우습지 않은가? 개그프로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 우습게 보이는 단순한 행동이 5천여 명을 먹이는 기적을 만든 것이다. 있는 그대로 주님께 드린 제자와 있는 그대로 감사를 드린 주님이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 감사!’ 이것이 주님께서 드린 감사의 특징이다. 있으면 있는 그대로, 없으면 없는 그대로, 많으면 많은 그대로, 적으면 적은 그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그대로 감사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모든 상황에 감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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